"‘그 집착은 토야를 좋아해서야?’ 단장의 물음은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감정을 단숨에 집약해버렸다."
야치 에미코,「내일의 왕님」
감정을 집약한다니. 참 멋진 표현.
어떤 종류의 슬픔만이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설명당하는 쪽인가 설명하는 쪽인가.
사토루 마키무라의 이매진을 엉엉 울면서 봤다. 겉으로는 얌전해보여도 내면이 강하고 당당한 유우와 부드럽고 자상하지만 보수적이고 우유부단한 타나카. 타나카가 유우에게 너는 강하니까, 강한 입장이니까 참아주면 안되냐고 물을 때 보고있는 내 속이 상했다.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어떤 연애든 추억에는 모두 소중한 이름이 붙는 것 같다. 상대방의 좋았던 면도, 이기적이고 나빴던 면도 모두 알아가는거다. 관계에서 100% 완벽한 답은 없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관계는 어느 한쪽의 성숙함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부모 자식이 아니니까. 그래도 생에 완벽한 관계를 하나쯤 만들어나가고싶다는 꿈을 품고있는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순진한 바보인걸까.
마음 한편으론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하면서 또 한 마음으론 아무 관심도, 감흥도 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관계라는건 무거워 지는 쪽으로만 기우는 습성이 있다. 가끔 그 무게만큼 우스워진다. 사랑도 그렇다.
내 마음을 모두 전달하기에는 요령과 용기가 부족하다. 세월을 헤쳐온 나이도, 사건들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걸 보니 인간은 서른이 되어도 오십이 되어도 모두 애송이들인 것이 틀림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아름답게 솔직해지지 못하는걸 보면 시간 앞에선 진보와 퇴보가 모두 같은 말인 듯 하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잃는 법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책을 선물줬으면 좋겠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미우라 시온의 책도 좋다.
돈을 벌어서 책을 잔뜩 샀다. 나는 왜 이렇게 책이 좋은걸까. 활자를 해석하고 그 단어를 입안 가득 머금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흥분된다. 짜릿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쓴 문장을 읽으면 행복하다. 잘 만들어진 것들에는 오랜 시간 단련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고착된 아름다운 법칙이 서려있다. 인간은 양식미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흥분하는 존재들이다. 형태를 담는 그릇이 바뀔 뿐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의 법칙같은 것이다. 개념은 틀림없이 실제한다.
나는 지금 마치 늘어진 현. 온 몸의 감각이 반음정도 내려가 피치를 조절할 수가 없다. 조율이 필요하다. 음악을 듣던, 직접 연주하던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과 정신을 마주해야한다. 외톨이로 고립되어있다보면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엔 스스로를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나를 찾는 이 없이, 내가 찾을 이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외롭구나.
돈코츠라멘, 마늘이 듬뿍 들어간 교자, 잔치국수, 연어가 살짝 올라간 덮밥, 면발이 조금 두꺼운 우동-반드시 푹 익어야한다. 맛있는 일식 먹으러 가고싶다. 후식은 파르페, 시원하고 달달한 홍차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병을 사가야겠어. 라는 설정으로 상상하고있다. 침대에 누워서.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2010
재미없었다. 원작에게 미안할정도로 재미가 없다.
요 몇일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열심히 보고있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감미로운 시부야 기타계 밴드를 하고싶어하는 네기시가 데스메탈 악마계 밴드에서 보컬을 맡으면서 원치않게 강간의 신, 살인마, 악마로 불리며 메탈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내용인데, 그 네기시 내면세계의 갈등을 엄청나게 코믹스럽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게 또 공감가는 것이, 나는 재즈와 소울을 좋아하는데 대학시절 잠깐이지만 블랙메탈을 전문으로 하는 인디 레이블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밴드모집 공고를 보고 들어가봤는데 밴드도 밴드지만 헤비메탈도, 데스메탈도 아닌 블랙메탈을 좋아하는 레이블이다보니 밴드가 다 같이 모여 공연을 하거나 회식을 하러 갈 때 분위기가 엄청났었다. 모여서 합주하거나 이런 저런 곡을 만드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공연 때 화장을 심하게 하거나 관객들의 퍼포먼스가 엄청났던 점이 나와는 맞지 않아서 곧 그 밴드를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도 홍대에 가면 그 블랙메탈 레이블의 공연장을 지나치곤 한다. 아.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에 비하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에서 네기시가 부르는 곡들은 감미로운 수준이다.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지만 나는 내적 갈등에서 재즈가 승리한지라, 이왕이면 재즈로 성공하고싶다. 네기시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하하)